
1970년 10월 5일, 서안西安 비림구碑林区 하가촌何家村 한 평범한 수용소收容所 확장 공사가 뜻밖에 천 년 동안 먼지가 쌓인 역사를 드러냈다.
시공팀은 얕은 토양층에서 거대한 도자기 항아리陶瓮를 발견했고, 열리자 눈부신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 안에는 금은옥기가 가득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 갑작스러운 보물은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관련 부서의 주목을 빠르게 받았다.
그 후 탐사에서 더 많은 발견이 이루어졌고, 또 하나의 도자기 항아리陶瓮와 은항아리银罐가 발굴되었다.
세 개 용기에서 금은기, 장신구, 귀중약, 외국 화폐 등 천 개가 넘는 보물이 수거되고 그 가치 또한 매우 높다.

금은기만 해도 금 천냥에 해당하는 265점이 있고, 그 안에 국보로 지정된 것도 몇 개 있다.
전문가들은 이 기물들이 천여 년 전 당나라 황실에서 나온 것임을 입증했다.
땅속에 묻혀 있던 역사가 이렇게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 귀중한 유물들은 의외로 우리에게 그 찬란한 시대를 새롭게 인식하게 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출토 유물 중에서 그 梁银罐에서의 발견은 매우 특별하다.
항아리 안에 고인 물에 두 개 큰 금박两块大金箔이 떠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금박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말렸고, 처음 무게를 쟀을 때 11근이나 나갔다.

이 숫자는 진지하게 기록되었다. 금박金箔은 이후 은항아리에 다시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서 보존했다.
몇 달 후, 직원들은 금박을 꺼내 고고학 보고서를 작성할 준비를 했고, 무게가 8.78근만 남아 2.22근 줄어든 것을 발견했다.
금박이 허공으로 이렇게 많이 사라진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 일은 박물관에서 떠들썩하게 되었다.
혹시 내부자가 물건을 훔쳤나?
상부에서 즉시 비밀리에 조사했지만, 결과는 세 달이 넘었지만 아무런 단서도 없었고, 금박은 240g이 더 줄어들어 합쳐도 거의 세 근이 되었다!
박물관은 지금 '황금 강도 사건'의 그림자에 가려져 고고학 전문가들은 초조해하고 있었다.
박물관은 어려운 문제에 부딪혀 어쩔 수 없이 서북대학西北大学 물리화학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교수들은 경위를 듣고 별로 놀라지 않고 오히려 웃으며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들은 실험을 하기로 결정했다. 남은 금박을 다시 물에 3일 동안 담근 후, 꺼내어 건조시키고 무게를 쟀다.
일의 결과는 매우 놀라웠고, 금박 무게는 기적적으로 처음 11근으로 돌아갔다.
'황금 실종 사건'은 오해였다.
금박은 겉보기에는 건조해 보이지만 내부 구조에는 수분이 많이 포함돼 있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수분이 천천히 증발하면서 금박 무게가 줄어들었다.
금박은 다시 물에 담갔다가 다시 수분을 흡수하면 무게가 회복된다.
이 '황금 강도 사건' 진실은 금박이 물을 흡수한 후 무거워졌다는 것이다.
일은 이렇게 간단하고 진실은 매우 극적이었다.
금박 증발은 오해였지만, 문문 보호에 대한 깊은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문물을 과학적으로 보존하고 보존 과정에서 변화나 손상을 방지하는 것은 현재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니깐.

저 하가촌 보물 수거 사건은 중국 고고학에서 대서특필한다.
섬서성박물관에 가면 그 조사성과를 한 코너를 따로 떼어내어전시 중인데 그 문물의 화려함은 기를 질리게 한다.
그에 대해서는 별도 코너로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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