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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세상을 바꾸려 하지만..." 레프 톨스토이 레프 톨스토이Leo Tolstoy(1828–1910)는 러시아의 소설가, 철학자, 도덕 사상가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명성을 떨쳤다. 러시아 툴라Tula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톨스토이는 기념비적인 소설 전쟁과 평화(1869)와 안나 카레니나(1877)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그의 말년은 영적 각성과 기독교 무정부주의, 평화주의, 그리고 물질적 부의 거부로 점철되었다. "모두가 세상을 바꾸려 생각하지만 자신을 바꾸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행복해지고 싶다면, 행복해져라.""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니나)"가장 강력한 두 전사는 인내와 시간이다." (전쟁과 평화)"잘못은 잘못된 길을 멈추지 않는다. 왜냐면 다수가 그것.. 2025. 4. 20.
아데아 에우리디케, 마케도니아 제국 마지막의 처절한 패배자 기원전 337년 무렵 태어난 아데아 에우리디케 Adea Eurydice는 알렉산더 대왕 사후 격동의 시대에 중요한 인물이었다.마케도니아 필리포스 2세와 아우다타Audata 딸인 키나네Cynane의 딸이자 일리리아 왕가 Illyrian royal house 후손이었다.무술 실력이 중시되는 환경에서 자란 아데아는 사냥, 승마, 그리고 경우에 따라 전투 훈련을 받았다.혈통은 그를 당대 왕조 투쟁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알렉산더 대왕 이복형제이자 알렉산더 사후 마케도니아 왕위에 오른 필리포스 아리다이오스 Philip Arrhidaeus 아내가 되었다. 아데아 에우리디케 삶은 알렉산더 제국 붕괴 이후 이어진 권력 투쟁에 연루된 것으로 점철되었다.그는 정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알렉산더 대왕의 어머니 올림피아.. 2025. 4. 20.
로마에서는 메뚜기가 밤을 밝혔다? 딱 봐도 메뚜기요 딱 봐도 등잔이다.그렇다 메뚜기 장식 등잔이다.딱 봐도 로마 등잔이다.밤이나 어둠을 밝히는 그 등잔이다.Roman lamp decorated with a grasshopper feedingDated I/II century.Found in Egypt.British Museum..이렇댄다.이집트에서 출토한 로마시대 메뚜기 장식 등잔으로 브리티시 뮤지엄 소장품이랜다.이집트가 로마 치하로 들어간 시점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절이니 대략 이천살 정도라 보아 될 성 싶다.저에다가 기름 담가서 어둠을 밝혔다.한데 왜 메뚜기일까?#등잔 #로마등잔 #메뚜기 2025. 4. 19.
하토르를 장식한 이집트 펜던트 2,700 years old, this Hathor-headed crystal pendant originates from Sudan (ancient Nubia) and is attributed to the Napatan Period, during the reign of Piankhy (Piye). 2,700년 된 고대 이집트 하토르Hathor 머리 장식 크리스탈 펜던트crystal pendant다.수단(고대 누비아Nubia)에서 유래했으며 피앙키Piankhy(피예Piye) 통치 기간인 나파타 시대Napatan Period에 귀속한다. 금과 락 크리스탈rock crystal로 만든 이 펜던트는 크기가 5.3 x 3.3cm이며 디스크 하나와 뿔들disc and horns로 왕관을 씌운 하토르 머리가 얹힌 .. 2025. 4. 19.
아리아페이테스, 스키타이 제국의 실력자 아리아페이테스Ariapeithes 왕은 기원전 5세기 초 스키타이인들의 주목할 만한 통치자였으며, 주로 헤로도토스Herodotus의 역사적 기록에서 알려져 있다.강력하고 존경받는 왕으로서 아리아페이테스는 흑해 북쪽의 대초원을 가로질러 뻗어 있는 유목 제국인 스키타이 영토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그는 힘, 전쟁에 대한 기술, 스키타이 전통에 대한 충성심 등 그의 민족의 가치를 예시했다.그의 통치 기간 동안, 그는 동맹을 맺고 이웃 부족들과 평화를 유지하여 그의 왕국의 번영을 보장했다.아리아페이테스는 서로 다른 부족의 여러 여성과 결혼하여 다양한 문화 집단 간의 전략적 유대를 강화했다.그의 아내 중 한 명은 그리스인이었고, 그들의 아들 실라스Scylas는 나중에 그리스 문화에 대한 그의 매혹으로 알려지게.. 2025. 4. 19.
폭정으로 자멸한 노섬브리아 왕 에델레드 On April 18, 796, King Ethelred I of Northumbria was killed.796년 4월 18일 노섬브리아Northumbria 왕 에델레드Ethelred 1세가 살해되었다.에델레드 친구인 프랑크 왕 샤를마뉴Charlemagne는 이 일로 노섬브리아인들에게 너무 짜증이 나서 그들에게 전쟁을 선포할 뻔했다.하지만 에델레드 자신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왕으로서의 자기 긍정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에게 위험한 사람들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폭력은 왕의 적들에 의한 반란을 유발했다. 2년간의 내전 끝에 그는 목숨을 바쳤고, 왕은 코브리지Corbridge에서 알려지지 않은 가해자들에게 살해되었다. 2025. 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