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 드 클리송 Jeanne de Clisson은 귀족 여성이었다.
프랑스 왕실은 공정한 재판 없이 그의 남편을 처형했다.
이 사건이 그녀를 완전히 다른 인물로 바꾸었다.
1340년대, 남편 올리비에Olivier가 반역죄로 참수당한 후, 잔은 자기 땅을 팔고 함대를 무장시킨 후 프랑스 왕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그녀는 기함을 검은색으로 칠하고 돛에는 피처럼 붉은 줄무늬를 그렸다.
이름하여 복수혈전!
10년이 넘게 잔은 영국 해협에서 프랑스 선박을 추적했다.
귀족, 군인, 왕실 관리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살아남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녀의 공격은 빠르고 잔혹했으며, 매우 인신공격적이었다.
그녀는 '브르타뉴의 암사자 Lioness of Brittany'라는 별명을 얻었다.

결국 그녀는 바다에서 자취를 감추고 재혼한 후 해적계는 은퇴 수순을 밟는다.
저 기간 그녀는 바다 위에서 가장 두려운 여인이었다.
신화도, 전설도 아니었다. 단 한 명의 분노한 미망인이 자신의 슬픔을 복수심으로 바꾸었고, 프랑스 왕실도 이를 막을 수 없었다.
***
잔느는 두번째 결혼 이후 마침내 브르타뉴 해안 항구 도시 에네봉 성에 정착했다.
이곳은 드 몽포르 동맹군 영토였다. 둘째 남편 월터Walter 는 1359년 12월에 사망했고, 잔느도 몇 주 후에 사망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여기선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지만 저짝에서는 해적이 되는 모양이다.
저 앞 인용문들은 전거가 좀 부족해 위키 영문항목을 정리한다.
잔느 드 클리송(1300~1359), 또는 잔 드 벨빌Jeanne de Belleville 또는 브르타뉴의 암사자Lioness of Brittany로 알려진 그녀는 프랑스/브르타뉴French/Breton 귀족 여성으로, 프랑스 국왕 필리프Philip 6세에게 반역죄로 처형된 남편의 복수를 위해 사략선privateer 선장이 되었다.
그녀는 영국 해협을 건너 프랑스 선박을 공격하여 거의 모든 선원을 정기적으로 학살했다.
복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선원을 최소한 한 명이라도 살려두는 것이 그녀의 관례였다.
잔 루이즈 드 벨빌Jeanne Louise de Belleville, 드 클리송de Clisson, 몽테귀 부인Dame de Montaigu은 1300년 브르타뉴 공국Duchy of Brittany과의 국경에 있는 프랑스 쪽 방데Vendée 강 가틴 방데엔 Gâtine Vendéenne의 벨빌쉬르비 Belleville-sur-Vie (비Vie 강변 벨빌Bellville)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벨빌과 팔루오의 귀족 모리스 4세 몽테귀 Maurice IV Montaigu of Belleville and Palluau(1263–1304)였고 어머니는 파르테네의 레티스 드 파르테네Létice de Parthenay of Parthenay(1276–?)였다.
바푸아투Bas-Poitou 지역 영주 가문이었던 드 몽테귀 가문de Montaigu family은 와인 양조, 소금 농사,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와 영국까지 이어지는 시장과의 무역을 직간접적으로 담당했을 것이다.
여기에는 비Vie 강을 따라, 푸아투Poitou와 브르타뉴Brittany 해안을 따라, 그리고 유Yeu 섬에 거점을 둔 상선과의 접촉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잔느의 아버지는 그녀가 네 살 때 사망했으며, 어머니가 재혼했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일부 기록에 따르면 아버지가 이전에 샤토브리앙의 시빌Sibille of Châteaubriant과 결혼한 것으로 보아, 그녀는 아버지의 재혼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 동맹으로 모리스 5세 몽테귀Maurice V Montaigu라는 아들이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1320년(?), 이복형제 모리스 5세가 사망하자 잔느는 상속자가 없었기 때문에 몽테귀와 벨빌Belleville의 영지를 물려받았다.
첫 번째 결혼
1312년, 약 12세였던 잔은 첫 남편이자 19세였던 브르타뉴 귀족 조프루아 드 샤토브리앙Geoffrey de Châteaubrian 8세(1326년 사망)와 결혼했다.
남편은 브리타뉴 귀족이었으며 이미 이미 알릭스 드 투아르와 사별한 상태였다.
두 사람에게는 다음 두 자녀가 있었다.
조프루아Geoffrey 9세는 남작Baron 자격으로 아버지 영지를 상속받았다가 라로슈-데리앙 전투Battle of La Roche-Derrien에서 사망했다.
루이 Louise(1316~1383)는 기 12세 드 라발Guy XII de Laval과 결혼하여 이후 남작 부인 자격으로 오빠의 영지를 상속받았다.
두 번째 결혼
1328년, 잔은 펭티에브르 가문의 기 드 펭티에브르Guy de Penthièvre of the House of Penthièvre와 결혼했다. 기 드 펭티에브르는 아부구르의 잔Joan of Avaugour과 사별한 브르타뉴 공작Duke of Brittany의 차남이었다.
잔은 미성년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결혼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결합은 오래가지 못했다.
공작 가문의 친척들, 특히 블루아 가문de Blois faction 출신들이 반느Vannes와 렌Rennes 주교들에게 자신들의 유산을 보호해 달라고 호소했고, 1330년 2월 10일 조사가 진행되어 교황 요한 Pope John 22세는 두 사람의 결혼이 취소했다.
그 후 기Guy는 프랑스 필리프 6세의 조카딸이기도 한 블루아 가문Blois faction의 마리 드 블루아Marie de Blois와 결혼했다. 기는 1331년 3월 26일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그의 유산은 그의 딸 펭티에브르의 잔 Jeanne of Penthièvre 에게 넘어갔다.
1330년, 잔은 클리송Clisson에 성 하나, 낭트Nantes에 영주 저택, 그리고 블레인Blain에 땅을 소유한 부유한 브르타뉴인 올리비에 4세 드 클리송Olivier IV de Clisson과 결혼했다.
올리비에는 처음에 블랑슈 드 부빌Blanche de Bouville(1329년 사망)과 결혼했다.
올리비에는 이 첫 번째 결혼에서 아들 장Jean을 낳았는데, 이 아들은 나중에 파리 근처 밀리의 영주Lord of Milly로서 어머니 땅을 상속받았다.
샤토브리앙 영주 Lord of Châteaubriant의 최근 미망인이었던 잔Jeanne은 서쪽 보부아르쉬르메르Beauvoir-sur-Mer에서 클리송Clisson 남동쪽 샤토뮈르Châteaumur까지 브르타뉴 국경 바로 남쪽의 푸아투Poitou 지역을 지배했다.
혼인 계약서에는 잔이 이전 결혼에서 얻은 자녀들의 상속 재산을 합법적으로 확보했다는 증거가 있다.
이러한 자산을 합쳐 잔과 올리비에는 브르타뉴 국경 지역 영주권seigneurial power(지역의 고위 영주senior Lord of an area)을 갖게 되었다.
Jeanne과 Olivier는 다음 다섯 자녀를 낳았다.
이자보Isabeau(1325–1343), 혼외 출생(올리비에와의 결혼 5년 전), 그녀는 결국 장 1세 드 리외John I of Rieux와 결혼하여 장 2세 드 리외Jean II de Rieux의 어머니가 되었다.
모리스(1333–1334)
올리비에 5세(1336–1407), 아버지의 후계자, 훗날 프랑스의 콘스타블Constable of France,이 되어 "도살자The Butcher"라는 별명을 얻었다.
기욤Guillaume(1338–1345), exposure로 사망
잔Jeanne(1340–?), 몽탕드르 4세Lord of Montendre IV의 후계자 장 아르페단Jean Harpedanne과 결혼
잔느는 혼인 계약서에 합의된 대로 올리비에 영지에서 보수를 받을 권리를 놓고 한때 법정에 섰다.
이 사건은 필리프 6세에게 재판을 받았고, 증인들이 그러한 약속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했기에 잔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
이 문제는 우호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브르타뉴 왕위 계승 전쟁
브르타뉴 왕위 계승 전쟁Breton War of Succession 당시, 드 클리송 가문de Clissons은 영국인 장 드 몽포르의 지지에 맞서 공석이 된 브르타뉴 공작 자리를 프랑스가 선택한 샤를 드 블루아Charles de Blois의 지지를 받았다.
드 클리송 가문은 이 문제에 대해 완전히 합의하지 못했으며, 올리비에 4세의 동생 아마우리 드 클리송Amaury de Clisson은 드 몽포르de Montfort party의 지지를 받았고, 다른 동생 가르니에 드 클리송Garnier de Clisson은 드 몽포르 de Montforts 가문에 맞서 브레스트Brest를 옹호했다.
1342년 1월, 샤를 드 블루아Charles de Blois를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프랑스 국왕 부관 로베르 베르트랑Robert Bertrand은 블레인에 있는 드 클리송 성de Clisson castle of Blain을 본부로 선정했다.
1342년, 영국군은 네 번의 시도 끝에 반느Vannes 시를 점령했다. 이 도시를 방어하던 군사령관이자 잔의 남편인 올리비에와 에르베 7세 드 레옹Hervé VII de Léon은 포로로 잡혔다.
올리비에는 프랑스군 포로였던 제1대 스태포드 백작 Earl of Stafford 랄프 드 스태포드Ralph de Stafford(제1대)와 교환하여 석방된 유일한 사람이었다.
요구 금액은 놀라울 정도로 적었다.
이로 인해 올리비에는 도시를 충분히 방어하지 못했다는 의심을 받았고, 샤를 드 블루아Charles de Blois는 그를 반역자로 고발했다.
토너먼트Tournament와 재판
1343년 1월 19일,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말레스트루아 휴전 협정Truce of Malestroit이 체결되었다.
이 휴전 협정의 안전이 보장되자 올리비에와 브르타뉴 및 노르망디 영주 15명이 프랑스 영토에서 열린 토너먼트에 불려갔다.
이후 올리비에가 체포되어 파리로 압송되어 동료들한테서 재판을 받았다.
300년 후, 앙드레 뒤셰네André Duchesne는 그 증거가 에드워드 왕과 이 영주들 사이에 동맹을 바꾸도록 설득하기 위한 사적인 서신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휴전 협정 제9조, 즉 "휴전 당시 한 왕에게 복종하는 사람은 휴전 기간 동안 다른 왕한테 복종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구출 시도 실패
잔느는 올리비에를 석방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녀는 왕의 부관에게 뇌물을 주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잔은 왕에 대한 반역, 불복종, 과잉 행위 혐의로 소환되었다.
잔은 장 드 클리송ean de Clisson(올리비에의 첫 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장남으로 당시 파리에서 동쪽으로 약 55km 떨어진 밀리 성Lord of Milly 영주)과 잔의 시종인 기욤 베라르Guilaume Bérard, Guionnet de Fay, 그리고 기욤 드나르Guillaume Denart의 보호를 받으며 체포를 피할 수 있었다.
이후 잔 자신은 브르타뉴로 도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잔은 소환을 무시했고 1343년 6월 결석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처형
1343년 8월 2일, 올리비에 4세는 레 알Les Halles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우리의 은총의 해인 1343년 8월 2일 토요일, 클리송의 영주이자 기사였던 올리비에는 프랑스 국왕과 왕실에 대한 여러 반역 및 기타 범죄, 그리고 프랑스 국왕과 프랑스 왕국의 적이었던 영국 국왕과 동맹을 맺은 죄로 파리 샤틀레Chatelet of Paris에 수감되어 있었다. 올리비에가 자백했듯이, 그는 오를레앙에서 국왕의 판결에 따라 파리 샤틀레에서 레 알로 끌려가 그곳에서 단두대 위에서 목이 잘렸다. 그곳에서 그의 시신은 파리의 교수대로 끌려가 가장 높은 곳에 매달렸고, 그의 머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브르타뉴의 낭트로 보내져 도시의 소베투 성문Sauvetout Gate 위에 창에 매달렸다.
이 처형은 귀족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죄의 증거가 공개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고, 시신을 모독하거나 노출하는 행위는 주로 하층민 범죄자에게만 국한되었기 때문이다.
장 프루아사르Jean Froissart와 그의 동시대인들은 이 처형을 가혹하게 평가했다.
이후 계속...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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