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8년 5월 13일, 스코틀랜드 여왕 Queen of Scots 메리Mary는 아들 제임스James 6세와 그의 지지자들에게서 왕위를 되찾으려다 글래스고Glasgow 외곽 랭사이드 전투Battle of Langside에서 패배했다.
아가일 백작Earl of Argyll 아치볼드 캠벨Archibald Campbell이 이끄는 메리 여왕의 군대는 메리 여왕의 이복형제이자 제임스 6세의 섭정regent 이던 모레이 백작Earl of Moray 제임스 스튜어트James Stewart가 이끄는 훨씬 소규모 군대에 패배했다.
패배 후 메리 여왕은 잉글랜드로 망명했으나 포로로 잡혔다. (사진: 조반니 파토리Giovanni Fattori, 랭사이드 전투)
결국 저 전쟁은 모자 대전 형식을 띠지만 당시 아들은 꼬맹이였고, 그 꼬맹이 배후는 이복동생이었으니, 결국 형제자매 내전이었다.
저 그림은 현장을 직접 보고 남긴 기록화가 아니다.
조반니 파토리는 이탈리아 태생 19세기 화가로 생몰이 1825~1908년이라 어디서 돈 받고 그렸거나 아니면 세계사 읽다 심심풀이 땅콩으로 그린 것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랭사이드 전투는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충성파와 그녀의 어린 아들 제임스 6세를 앞세운 세력 사이 다툼이었으니 돌이켜 보면 이것도 내실이 복잡했다.
메리의 짧은 통치는 1567년 카베리 힐Carberry Hill에서 포로로 잡힌 후 아들 제임스 6세한테 양위하는 조건으로 끝났지만 이게 어디 순순히 끝날 일인가?
저 패배 이후 메리는 로클레번 성Lochleven Castle에 투옥되었고, 그녀의 개신교 이복형제인 모레이 백작 제임스 스튜어트가 조카를 대신해 섭정이 되었다.
1568년 5월 초, 메리는 탈출을 감행해 서쪽으로 향하여 그녀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던 해밀턴 가문Hamiltons의 땅과 안전한 덤버튼 성Dumbarton Castle으로 가서 여왕으로서의 권리를 회복하기로 했다.
하지만 메리는 다시 패배해 잉글랜드로 추방되어 포로가 되었다.
이 전투는 보통 메리 내전Marian civil war의 시작으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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