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시Potosí에 있는 카사 데 라 모네다Casa de la Moneda,로 알려진 볼리비아 국립 조폐국National Mint of Bolivia을 방문하는 동안 방문객들은 1800년대 두 스페인 어린이라는 마카브레macabre 전시를 접한다.
이는 이 지역 동전 생산coin production과 은 채굴silver mining의 풍부한 역사를 주로 연대기로 기록한 박물관에 침울한 차원을 더한다.
이 미라들이 보존된 것은 포토시의 고도가 높고 춥고 건조한 기후가 자연적으로 분해decomposition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박물관은 식민지 시대의 주조 과정과 원주민 노동자들의 착취에 대한 광범위한 통찰력을 제공하지만,
이 미라화한 유적을 포함하는 것은 포토시의 이야기된 과거와 얽혀 있는 개인적 비극을 가슴 아프게 상기한다.
(이상 저 아기 미라에 대한 설명인데 추가 정보를 찾으려 했으나 쉬 걸리지 않는다. 다음은 이 조폐국 이야기다. 이 조폐국 이야기는 위키피디아 영문 항목을 전문 옮긴다.)
볼리비아 국립 조폐국[Casa de la Moneda de Bolivia] 또는 포토시 조폐국Mint of Potosí[식민지 시대]은 스페인 본토로 건너간 은 대부분을 보낸 곳이다.
이 시기 이곳에서 주조한 주화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져서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기념한 속담인 valer un potosí, 곧 "포토시potosí 만한 가치[재산]가 있다"는 말이 쓰일 정도였다.
이곳 화폐 주조는 세로 리코Cerro Rico에서 은광이 채굴되고, 인구가 늘어나며, 상업적으로 확장되고, 포토시 위상이 눈에 띄게 높아진 데서 시작한다. 마침내 주조는 1572년 시작해 1767년까지 212년 간은 초보적 기술을 기반으로 삼는다.
스페인 총독Spanish viceroy이자 오로페사 백작Count of Oropesa인 프란시스코 데 톨레도Francisco de Toledo 제안으로 첫 번째 주화 주조소 건설이 시작된다.
1572년 건축가 제로니모 레토Jerónimo Leto 후원으로 플라자 델 레고지호Plaza del Regozijo 왕궁 근처에 공사를 시작해 3년 만에 완공을 본다. 그 전체 비용은 8천 페소pesos를 넘었는데, 이는 어마어마한 액수라 한다. 스페인 황제 카를로스Charles 3세는 그 비용을 듣고는 "건물 전체를 순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을 정도라니 말이다.
18세기 중반, 이제 새로운 시대에 접어든다.
오래된 공장을 개조해서 동전을 제조하고 은 제련을 하려는 계획은 스캔들이 터지는 바람에 무산하고 대신 그 인근 플라자 델 가토plaza del Gato에 새로운 건물을 세우는 것으로 결정난다.
새 공장은 1757년 공사를 시작해 1770년에 완공되었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망치로 두드린 주화Hammered coinage는 두 개 다이dies 사이에 맞는 무게 빈 금속 조각을 놓고 망치로 위쪽 다이를 두드려 양쪽에 필요한 이미지를 만드는 기술이다. 포토시 첫 번째 주화가 1773년까지 이전 공장에서 계속 이 방식을 썼다.
그러다가 최초의 나사 프레스 주화crew-press coins가 1767년에 생산된다. 이 방식은 이동식 증기 프레스moveable steam presses가 설치되는 1869년까지 지속된다.
1813년, 장군 마누엘 벨그라노Manuel Belgrano 지휘 아래 리오 데 라 플라타 연방주의 혁명United Provinces of the Río de la Plata 당국은 카사 데 모네다Casa de Moneda를 점령한다.
그 며칠 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열린 제13회 의회Assembly of the Year XIII에서 리오 데 라 플라타 연방주의 국가 통화를 제정했고, 이는 1813년 4월 13일에 승인되었다.
포토시 조폐국 Potosí Mint은 8, 4, 2, 1 에스쿠도escudos 가치의 금화gold coins와 8, 4, 2, 1, ½ 레알reales 가치의 은화silver coins를 주조했다.
이 주화는 스페인 국왕 얼굴 대신 "연합과 자유에서 In Union and Liberty"라는 문구를 새기기 시작했다. 앞면에는 눈, 코, 입, 32개 광선이 있는 5월의 빛나는 태양Sun of May이 그려졌고, 뒷면에는 아르헨티나 국장이 그려졌다.
이 문구는 리오 데 라 플라타 연방주를 나타내며, 포토시 주화조폐국Potosí mint을 나타내는 PTS 모노그램monogram이 새겨져 있었다. 1815년에 프레스기들은 포토시에서 코르도바Córdoba로 옮겨졌는데, 이곳에 아르헨티나 최초의 조폐국이 설립되기에 이른다.
볼리비아 공화국은 1825년 8월 6일에 수립된다.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ívar와 안토니오 호세 데 수크레Antonio José de Sucre 지원에 힘입어 15년간의 갈등 끝에 행정 조직과 통화 단위가 만들어졌으나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스페인 통화가 계속 유통되다가 2년이 지나서야 최초의 공화국 동전이 주조된다.
1933년 폐쇄된 조폐국은 남미 그란 차코Gran Chaco 지역을 서로 차지하고자 볼리비아와 파라과이가 벌인 차코 전쟁Chaco War 기간에 그 본부로 사용되었다. 그 뒤에는 포토시 시장을 오가는 농민들이 마구간으로 썼다.
지금 조폐국은 박물관이 되었다. 볼리비아에서 가장 중요한 박물관 중 하나로 간주된다.
1987년 이 건물을 포함한 포토시는 도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다.
'문화유산현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폼페이가 폭로한 실레누스와 어린 사티로스 (0) | 2025.03.12 |
---|---|
앵클릿에 발가락 반지, 철기시대 이행기 프랑스 무덤들이 쏟아낸 정보들 (0) | 2025.03.12 |
폼페이 유적의 미스터리한 미스터리 빌라 (0) | 2025.03.12 |
봐야 하는 오스티아 안티카 (0) | 2025.03.11 |
아시리아 왕 이름을 새긴 궁전 문턱 (0) | 2025.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