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예루살렘 심장부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돌에 새긴 생명줄과 같은 것이었다.
히스기야Hezekiah 왕은 탁월한 전략적 재치와 공학적 기교를 발휘하여 지하 수로를 건설했는데, 이 수로는 오늘날 히스기야 터널Hezekiah's Tunnel 또는 실로암 터널Siloam Tunnel로 유명하다.
기원전 701년에서 681년 사이, 센타헤립Sennacherib이 이끄는 아시리아의 전쟁 기계가 성벽에 가까워지자 히스기야는 예루살렘 수원을 확보해야 할 절실한 필요성을 깨달았다.
도시의 주요 수원인 기혼 샘 Gihon Spring은 요새 바깥에 취약한 위치에 있었고, 이는 포위군에게 잠재적인 이점이 될 수 있었다.

이러한 위협에 맞서기 위해 히스기야는 샘물을 예루살렘 중심부로 돌리는 비전을 세웠다.
이 기념비적인 작업은 견고한 암반을 뚫고 약 533미터를 수작업으로 굴착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고대 노동자들의 순수한 결단력과 기술을 증명한다.
이 업적을 진정으로 놀랍게 만드는 것은 두 팀의 굴착기가 제안된 터널의 양쪽 끝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초보적인 도구와 아마도 음향 신호에 의지하여, 이들은 바위를 깎아내는 데 온 힘을 다했고, 그 경로는 땅속 깊은 곳에서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하나로 합쳐졌다.
폭이 다양한 구불구불한 터널 모습은 굴착자들이 자연적인 균열과 복잡한 지형을 헤치며 직면했던 어려움을 암시한다.
터널 안에서 발견된 실로암 비문Siloam Inscription은 건설 과정을 엿볼 수 있는 매혹적인 증거이며, 두 팀이 마주친 순간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노동자들이 바위에 다가갈수록 도끼질 소리가 바위를 뚫고 울려 퍼지는 모습은 지질학적 저항에 맞선 인간의 노력이 빚어낸 승리의 교향곡과 같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고대 공공사업을 기록한 현존하는 희귀한 기록인 이 비문은 히스기야 터널이 단순히 공학적 경이로움을 넘어 예루살렘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연결하는 중요한 연결 고리로서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터널은 아시리아의 포위 공격 속에서도 도시의 생존을 보장했으며, 히스기야 왕의 선견지명과 독창성, 그리고 바위에 이 영원한 생명의 동맥을 새겨 넣은 노동자들의 헌신을 증명한다.
양쪽에서 터널을 뚫기 시작했는데 정확히 만났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임어당林語堂을 곤혹스럽게 만든 에우팔리노스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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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이번 에게해 탐방 코스에 저 사모스Samos 섬이 없다. 저와 더블어 레스보스 섬인가 하는 데도 그렇다. 혹 갈 기회가 있을란지 모르겠다. 각설하고 저 사진은 그리스 사모스 섬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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