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Capture of Antioch (969).
안티오크 함락(969년).
서기 968년, 니케포로스 2세 포카스Nikephoros II Phokas 황제는 미하엘 부르체스Michael Bourtzes를 아마누스 산맥Amanus Mountains(현재는 시리아-터키 국경에 있는 누르 산맥Nur Mountains, 안타키아Antakya 북쪽) 남쪽에 있는 작은 테마small thema(주province)인 마우론 오로스Mauron Oros("검은 산Black Mountain")의 파트리키오스와 스트라테고스patrikios and strategos로 임명했다.
이 스트라테고스의 임무는 새로 지은 파그라스Pagras 요새에서 아랍이 점령한 안티오크Antioch의 북쪽 접근로를 통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안티오크를 공격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969년 가을, 미하엘 부르체스는 1년간의 무위로 충분하다고 해서 황제가 부재 중에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고는 안티오크에 대한 주도권을 잡을 때가 되었다고 결정했다.
부르츠는 도시 내부의 반역자를 설득하여 도시 성벽의 주요 탑 중 하나를 취한 다음 300명 병력을 동원하여 밤중에 즉시 점령했다.
그 후, 그는 3일 동안 아랍인의 반복적인 공격에 맞서 이 위치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다.
969년 10월 28일, 스트라토페다르케stratopedarches(고위 장교) 페트로스 포카스Petros Phokas가 이끄는 지원군이 도착하여 비잔틴을 위해 도시를 확보할 때까지 말이다.
이 엄청난 성공에 기여했음에도, 부르체스는 보상을 받지 못했다. 명령에 불복종했다거나, 다른 설명에 따르면, 도시 대부분을 불태워 파괴한 데 화가 난 니케포로스 황제가 그를 직위에서 해임하고 그의 친척인 유스타티오스 말레이노스Eustathios Maleinos를 안티오크의 초대 총독governor으로 임명했다.
황제의 처우에 분노한 부르체스는 황제에 대한 음모에 가담했고, 969년 12월 10일 밤 궁전에 들어가 포카스를 살해한 공모자 중 한 명이었다.
이 도시는 같은 이름의 테마theme 시민 총독civil governor인 두doux의 본거지가 되었다.
1084년까지 비잔틴 제국의 손에 있었으며, 십자군Crusaders이 도착하기 14년 전 셀주크 투르크Seljuk Turks에 함락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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