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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폴, 반역자로 죽기를 거부한 헨리8세 시대의 여인 본문
그녀는 권력의 후예로 태어났지만, 운명은 위태로웠다.
솔즈베리 백작부인Countess of Salisbury 마거릿 폴Margaret Pole은 혈통과 정치가 교차하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았다.
클래런스 공작 Duke of Clarence 조지George의 딸이자 두 왕, 에드워드Edward 4세와 리처드Richard 3세의 조카인 그녀의 삶은 군주제의 잔혹한 변덕으로 형성되었다.
플랜태저넷 왕가 혈통royal Plantagenet blood은 그녀를 정통성의 상징이자 튜더 왕조Tudor regime에 대한 위협으로 만들었다.
어린 시절, 그녀는 아버지가 처형당하는 트라우마를 겪었다. 형인 왕의 명령에 따라 와인 통에 빠져 죽은 것이다.
플랜태저넷 왕가Plantagenets가 몰락한 후, 마거릿의 세상은 급변했다.
가문의 작위와 영지는 박탈당했고, 어린 시절 상당 부분을 궁정 변두리에서 보내며 운명이 얼마나 빨리 바뀔 수 있는지 아는 사람처럼 신중하게 위험을 헤쳐 나갔다.
헨리 7세 치하에서 마거릿의 운명은 조심스럽게 회복되었다.
그녀는 튜더 왕조의 충실한 하인인 리처드 폴 경Sir Richard Pole과 결혼하여 다섯 자녀를 두었다.
그중에는 레지널드 폴Reginald Pole이 있었는데, 그는 후에 헨리 8세가 아라곤의 캐서린Catherine of Aragon과 이혼하고 로마와의 관계를 끊는 데 반대하며 그에게 반기를 들었다.
마거릿은 겉으로는 충성심을 유지했고, 심지어 캐서린의 시녀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튜더 왕조 시대 영국에서 의심은 행동과는 거의 관련이 없었고, 오로지 혈연과 관련이 있었다.
헨리 8세가 스스로를 영국 국교회Church of England 수장으로 선포하자, 레지널드는 해외에서의 이러한 움직임을 비난했다.
헨리 8세는 격분했다. 마거릿은 고령이었고 아들의 정사와는 거리가 멀었음에도 표적이 되었다.
한때 위엄의 원천이었던 그녀의 왕족 혈통은 이제 죽음의 표적이 되었다.
그녀는 체포되어 재판도 없이 런던탑Tower of London에 수감되었고, 차가운 돌 요새에서 2년을 보냈다. 그들이 그녀를 찾아왔을 때 그녀는 70세였다.
1541년 5월 27일 처형 당일 아침, 그녀는 단두대로 끌려갔다.
그녀는 수수한 차림에 흰머리가 드러난, 조용하고 자존심 강한 여성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반역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고개를 숙이기를 거부했다. 도끼질하는 사람이 여러 차례 내리쳐야 그녀의 목숨을 끊을 수 있었다.
그녀의 죽음은 단순한 정치적 행위가 아니라 메시지였다.
나이, 충성심, 신앙심조차도 여성의 존재 자체가 남성의 권력에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그녀를 보호할 수 없었다.
이런 마가렛 이야기는 단순히 불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성들이, 심지어 가장 높은 계급에서 태어났음에도 얼마나 쉽게 희생양이 되었는지를 일깨운다.
그녀는 자신이 한 일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때문에 잊혀졌다.
그럼에도 그녀는 역사 속에 존엄하고 비극적이며,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하는 모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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