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피스리리의 걸작 '여인과 유니콘The Lady and the Unicorn'

중세 시대 유럽의 집과 궁궐은 춥고 외풍이 심했다draughty.
단열재insulation가 없었기에 난방은 벽난로나 화로, 또는 안에 불이 있는 난로에서만 얻을 수 있었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집을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 벽에 천을 걸어 팽팽하게 당겨 찬바람을 막았다.
중산층 가정에서는 방마다 다른 색깔의 천이나 일상생활 풍경을 그린 천을 사용했다.
귀족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정교한 태피스트리를 벽에 걸었다.
엄청난 부를 가진 사람들은 집안 모든 방의 벽에 태피스트리tapestries를 걸 수도 있었다.
최고의 태피스트리는 플랑드르Flanders 지방, 특히 브뤼헤Bruges나 아라스Arras에서 생산되었다.
이러한 태피스트리는 단순히 보온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신분의 상징이었다.
헨리 8세는 자신의 재산 목록에 2,450점이 넘는 태피스트리를 기록했다.
여러 개 태피스트리가 모여 하나의 방이나 세트(suite)를 이루었는데, 이러한 세트는 종종 하나의 연속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가장 잘 알려진 태피스트리 연작 중 하나는 '여인과 유니콘The Lady and the Unicorn'이다.
누가 의뢰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여러 작품에서 르 비스트 가문Le Viste family의 문장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프랑스 의회 의원이자 루이 12세의 궁정 신하였다.
앙투안 르 비Antoine Le Viste가 그의 첫 번째 왕비인 자클린 로기에Jacqueline Roguier를 위해 이 태피스트리들을 제작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연작은 시각, 미각, 청각, 후각, 촉각을 나타내는 다섯 점의 태피스트리와 '나의 유일한 소망Mon Seul Désir'이라는 제목의 여섯 번째 작품으로 구성된다.
현재는 색이 바래졌지만, 원래는 1480년에서 1520년 사이의 양식으로, 풍부한 붉은색 바탕에 꽃과 동물들이 배경으로 그려져 있었다.
작품들은 젊은 여성이 다양한 활동을 통해 여러 감각을 발휘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중앙 작품인 '나의 유일한 소망'에서는 그녀가 보석함을 꺼내거나 넣는 모습이 보인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준비하거나 세속적인 재산을 포기하고 수녀원에 들어가려는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되었다.